나눔- 더불어 함께



채 희동 목사님...... 2030 아름다운 세상

한번도 뵌 적이 없는 분인데, 그 분의 죽음이 왜 이리 안타깝고 가슴 아픈지요.
올 6월 아래글 읽고 눈물이 나던 때가 생각납니다.
마음을 잡아야지.......
그리고 아래글을 또 읽어 봅니다.
문제는 남이 아닌 하늘을 상대하지 못한 나에 있었음을 다시 한번 깨우쳐 봅니다.
채희동(<샘> 발행인, 목사)



손해 보더라도 착하게
친절하게 살자

상처 받더라도 정직하게
마음을 열고 살자

뒤쳐지더라도 서로 돕고
함께 나누며 살자

우리 삶은 사람을 상대하기보다
하늘을 상대로 하는 거다

우리 일은 세상의 빛을 보기보다
내 안의 빛을 찾는 거다.

- 박노해의 시 '참 사람이 사는 법'



산과 들에 봄꽃이 흐더러지게 피던 어느 날,
아들 윤기와 함께 선배 목사가 목회하는 수원의 자그만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세상에 작은 등불이 되겠노라 '등불교회'라 이름짓고 세워진 이 교회는
해마다 교회 창립을 기념하여 시인 초청의 밤을 열고 있습니다.
시인이 들려주는 한 편의 시를 통해 신자는 물론이요,
그 지역주민들에게 맑고 따뜻한 마음을 품고 살도록 하고 있는 것이지요.
올해는 얼굴 없는 시인으로 유명했던
박노해 시인을 초청하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박 시인은 한때 사회주의 나라를 꿈꾸며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어보겠노라고 소위 사노맹이라는 지하조직을 만들어 활동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차디찬 독방 감옥에서 오랫동안 갇혀 있으면서
생각이 바뀌고 관점이 바뀌고 신념이 바뀌었습니다.
노동해방보다도, 투쟁이나 이념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사람에게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지배하고 억압하고 착취하는 사람, 빼앗고 욕심 많은 사람,
이런 사람에게서 희망을 본 것이 아니라,
그가 말한 사람은 착하고 정직하고 서로 돕고 나누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이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수 있다는 것입니다.



손해 보더라도 착하게,
친절하게 살자

상처 받더라도 정직하게
마음을 열고 살자



초등학교 '바른생활' 책에나 나올 법한 시인의 이 노래는
교과서에 갇혀 있을 뿐,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교과서 책장을 벗어나 시인의 입으로 들려주는 노래는
"아, 그렇구나, 그렇게 살아야지. 그렇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거야."
저절로 다짐을 하게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삶은 착하게 친절하게 사는 것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손해보지 말아야 할 것에 더 신경쓰며 살았습니다.
혹 내가 손해를 보노라면 그것을 만회하려고
더 악해지고 욕심만 쌓여 착하고 친절한 나의 모습은 잊혀져왔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손해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착하게 친절하게 사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받은 손해는 착하고 친절한
나의 삶으로 얼마든지 만회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은 위장술에 능숙합니다.
명함을 돌리며 자신을 그것으로 위장하고, 돈이나 지위,
온갖 겉모습을 치장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현대인입니다.
자신을 온갖 모양으로 치장하고 감추는 것은
타인으로부터 상처받지 않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상처는 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랑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는
무미건조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아름답게 꾸민 사람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주는 사람입니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며
서로 소통하고 왕래하고 서로 마주 보기 때문입니다.
나의 장점뿐만 아니라 약점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때,
또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아 줄 때 마음이 열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바람이 불고 생각 가득해져
아름다운 세상이 열릴 것입니다.

박 시인은 강연에서
지난 5년 동안 소리없이 준비해 온 일 한 가지를 소개하였습니다.
그것은 나눔운동이었습니다.
이 일을 위해 '나눔문화' 단체를 만들어 물질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삶을 나누어 모든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자는 것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 같지만,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교회도 나눔을 말하지만 실제적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교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박노해 시인은 이제 투쟁이나 이념, 운동을 통한 혁명이 아니라
'나눔이 곧 혁명이다.'라는 사실을 깨닫고 몸소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뒤쳐지더라도 서로 돕고
함께 나누며 살자



돈 있고 힘 있는 몇몇 사람만 앞서가서는 안 됩니다.
뒤쳐지더라도 모두가 함께 가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그것이 나눔의 길입니다.
이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그는 돈 있는 사람도, 힘이 있는 사람도,
학식이 높은 사람도, 지위가 높은 사람도 이 단체에 끌어들여 나눔을
실천하도록 교육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난한 빈민촌에 학교를 세우고, 넓게는 이라크와 베트남 등지에도
학교를 세울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신(物神) 맘몬을 섬기는 이 자본주의 시대에 혁명은 나눔뿐입니다.
내 것을 너와 나누는 것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이 많은 것은 물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나누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사랑을 나누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은 나눔이었습니다.
당신의 살과 피를 나누시고 마침내 생명을 내어주심으로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었습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밥을 나누고 나의 재능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마침내 생명까지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나라는 그저 교회 안에서 우리의 입으로만 머물지 않고
우리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박 시인은 교회 친교실에 먼저 와 있는 신자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악수하고 맑은 미소로 인사를 하였습니다.
제 곁에 있는 제 아들에게는 자신의 턱수염을 아이의 보드라운 볼에 비비면서
"윤기야,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 마." 하며 아주 부드럽고 감미로우면서도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인사를 하였습니다.
"아저씨, 따가워요." 하며 뒷걸음치는 아이를 번쩍 안아
다시 볼에 입맞춤을 해줍니다.
저는 지금까지 박노해라는 사람처럼 순수하고 맑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모든 이를 맑은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고 따스한 손으로 잡아주는 이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과거 해방을 노래하고 혁명을 꿈꾸던 투사가
이토록 따스하고 맑고 순수한 사람이었다니,
그것은 박노해라는 사람 속에 바로 하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은 사람을 상대하기보다
하늘을 상대로 하는 거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은 하찮은 자본가나 정치가
더 나아가서는 혁명가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상대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땅에 있지만 하늘을 품고 사는 존재요,
신령한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거룩한 존재인 것입니다.
하늘을 상대하는 존재이기에 나는 손해 보더라도 착하게 친절하게 살 수 있고,
상처받더라도 정직하게 마음을 열고 살 수 있고,
뒤쳐지더라도 서로 돕고 함께 나누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결국 이 세상에서 영광을 누리고 빛을 보기 위함이 아니라
내 안의 빛을 찾아가는 구도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 일은 세상의 빛을 보기보다
내 안의 빛을 찾는 거다



하늘의 삶을 사는 것은 뭐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착하고 정직하게 서로 나누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십자가에 매다는 신앙적 결단과 하늘의 뜻을
이루려는 구도자적인 삶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시인이 우리에게 노래하고 몸소 보여 주었던 이 길을 걸어가노라면
어느덧 우리 안에 하늘의 빛이 환히 비춰져서
우리 영혼이 빛나고 세상이 더욱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덧글

  • 요하니 2004/12/07 10:03 # 답글

    내가 첨으로 채희동 목사님의 빛을 받은 '우리의 삶은 하늘을 상대하는 거다' 올림
  • 윤상호 2005/10/14 12:33 # 삭제 답글

    가슴이 따뜻해집니다....제 친구 중 나눔에 집에서 오랬동안 봉사활동을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들 통해 늘 아름다운 세상을 경험하곤 한답니다....
    요하니님 감사합니다....
  • 요하니 2006/01/06 10:45 # 삭제 답글

    '내가 받은 손해는 착하고 친절한 나의 삶으로 얼마든지 만회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에 다시 한번 밑줄!
  • 굄돌 2010/04/08 08:54 # 삭제 답글

    여기 있었네요.
    채희동 목사님이 쓰신 글인줄 알았는데
    박노해 시인이었군요.
    원미동이라고 하셨지요?
  • 요하니 2014/02/28 15:46 # 답글

    오늘 다시 한번. 익수를 만난날
  • 요하니 2014/05/19 04:54 # 답글

    오늘 새벽 봄걷사 카페의 링크를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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